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아킨 아르치발도 구스만 로에라 (문단 편집) == 생애 == 구스만은 1957년 멕시코 시날로아 주 바디라구아토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구스만의 아버지는 먹고 노느라 방탕한 생활을 하며 모든 돈을 탕진하는 [[막장 부모]]였고, 구스만과 그의 형제들을 때리면서 학교를 그만두라고 협박까지 하는 [[인간 말종]]을 인증하는 짓거리를 해댔다고. 결국 구스만은 학교를 중퇴하고 [[마리화나]]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다고 한다. 이때 그가 마리화나를 팔면서 얻은 별명이 바로 땅달보란 뜻의 ‘엘 차포’였다. 그러다 구스만은 15살 때 더 큰 기회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났는데 자신의 삼촌을 통해 마약 조직 ‘과달라하라 카르텔’에 합류한 그는, 1970년 후반부터 미국과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시에라 마드레 지역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마약 밀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구스만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조직원과 밀수업자를 냉정하게 살해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조직의 마약 점유율을 높여갔고, 이러한 구스만의 일처리 방식을 좋아한 과달라하라 카르텔의 지도자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는 1980년 초에 구스만을 과달라하라 카르텔 조직의 간부로 임명했다. 1989년 마약 조직원으로 위장해 잠입한 미국 마약단속국([[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DEA]]) 요원들에 의해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는 체포되지만, 가야르도는 이미 자신의 과달라하라 카르텔을 친척과 부하들에게 분할해 놓은 상태였다. 이때 분할된 조직들이 오늘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기원이 된다. 가야르도는 티후아나 루트는 아레야노 펠릭스 형제에게[* 티후아나 카르텔로 발전], 후아레스시 루트는 카리요 푸엔테스 가문에게[* 후아레스 카르텔로 발전], 소노라는 미겔 카로 킨테로에게[* 소노라 카르텔로 발전. 나중에 시날로아 카르텔의 하부조직이 된다.], 타마울리파스의 마타모로스 경로는 후안 가르시아 아브레고에게 할당되었다.[* 걸프 카르텔로 발전]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와 [[이스마엘 삼바다 가르시아]]는 태평양 연안의 사업을 맡게되었다.[* 시날로아 카르텔로 발전] 한편 구스만은 사실상 몰락한 [[콜롬비아]] 마약 조직과 손잡고 미국에 마약 공급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중남미의 마약시장을 쥐고 흔들던 [[콜롬비아]]의 마약조직들이 미국 정부의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인해 카리브해 플로리다 간 마약 공급 경로의 위험성이 높아지던 시기였는데 구스만의 보스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가 콜롬비아의 메데인카르텔과 칼리 카르텔과 협상을 통해 멕시코를 경유하는 새로운 밀수루트를 개척했다. 이처럼 마약 유통 흐름이 변화되자 시날로아 카르텔은 1990년대부터 마약 밀수에서 역할이 더욱 확대되었으며 조직의 영향력이나 수입이 엄청나게 늘었다. 또한 '대부' 가야르도가 처음 개척한 일반적인 지상 루트의 마약 밀매에 만족하지 않고 큰 규모의 지하 터널을 파서 한 번에 엄청난 양의 마약을 빠르고 정확하게 밀수하는 루트를 개척하여 조직의 규모를 어마어마하게 키우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가 1993년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청부살해 혐의로 한번 체포되는데, 이때 최초로 멕시코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된다. 그때 직업을 묻는 한 현지언론의 인터뷰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부입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